바닷바람 따라 걷는 경주 해안길 여행, 파도소리길과 간포항까지 정리

시작하며

조용히 걷기 좋은 해안 산책로를 찾고 있다면, 경주로 눈을 돌려볼 만하다. 전통적인 유적지로 널리 알려진 이 도시는, 최근 파도소리길과 깍지길 같은 아름다운 해안길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예전에는 군사 작전 구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불가능했던 곳들이 지금은 잘 정비된 산책로로 바뀌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하서항에서 시작해 간포항, 송대말 등대까지 이어지는 해안 트레킹 코스를 소개한다. 걷기 쉬운 거리와 평탄한 길, 자연 풍경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시간까지 담긴 이 길은 바다와 가까워 걸을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1. 경주의 숨은 시작점, 하서항

서울에서 차로 약 4시간이면 도착하는 하서항은 이번 트레킹의 출발점이다. 항구 앞에 마련된 주차장은 넓고, 별도의 주차 요금이 부과되지 않아 방문하기에 부담이 없다. 주차장에서 나와 주황색 길을 따라가면 산책로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하서항이 위치한 진리 마을은 과거 ‘진리왕’ 또는 ‘율포진리앙’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산책로 입구는 바다와 인접해 있어, 걷기 전부터 파도 소리와 함께 기대감이 높아진다.

 

2. 파도소리길, 주상절리 품은 해안 데크길

하서항과 읍천항 사이에 위치한 파도소리길은 전체 길이가 약 1.7km로 짧은 편이다. 길이 짧아 왕복해도 1시간 반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데다가, 평탄한 길이라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산책로는 나무 데크와 자연석 길이 번갈아 나타나고, 걷는 내내 바다의 풍경과 파도 소리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입구 근처부터 주상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주상절리는 약 2,000만 년 전 화산 활동으로 인해 생성된 기둥 모양의 바위 형상으로, 자연이 만들어낸 독특한 풍경이다.

이 구간은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지질학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수직 형태는 물론, 누운 듯한 주상절리도 관찰할 수 있는데, 마치 나무 기둥을 차곡차곡 쌓아둔 듯한 인상을 준다. 안내판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설명을 읽으며 관찰하면 흥미를 더할 수 있다.

 

3. 사랑의 열쇠와 하트 포토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방파제 끝에 ‘사랑의 열쇠’라는 조형물이 등장한다. 이는 신라 시대 충신 박재선과 그의 아내의 애틋한 사랑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연인들이 프로포즈를 하거나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 방문하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붉은 하트 조형물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지는 장면은 사진 찍기에도 훌륭하다. 그 외에도 바위 위에 자라는 소나무, 잔잔한 파도, 몽돌 해변 등 눈길을 끄는 요소들이 많다.

 

4. 전망대에서 바라본 절경

걷다 보면 주상절리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월요일은 휴관이니 일정에 참고하면 좋다. 전망대 1층에는 다양한 지질 자료와 전시물이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기에도 적당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전망타워로 올라가면, 누워 있는 부채골 모양의 주상절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뷰가 펼쳐진다. 유리 통창을 통해 360도로 펼쳐진 바다 풍경과 경주 해안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온다.

전망대 곳곳에는 사진을 찍기 좋은 포인트가 마련되어 있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벤치도 있어 잠시 머물기 좋다.

 

5. 바다 위 출렁다리와 하트 해안

전망대를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바다 쪽으로 독특한 모양의 해안선이 나타난다. 이곳은 ‘하트 해안’으로 불리며, 위에서 내려다보면 실제 하트처럼 생긴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탁 트인 전망과 함께 인생샷을 남기기에 제격이다.

이후로는 출렁다리가 등장한다. 바닷바람과 함께 흔들리는 이 다리는 걷는 재미도 있고,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매우 인상 깊다. 요즘은 어딜 가도 출렁다리가 빠지지 않는데, 이곳의 출렁다리는 특히나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져 그 존재감이 크다.

 

6. 읍천항에서 만나는 소소한 풍경

파도소리길의 끝자락인 읍천항에 도착하면 조용한 어촌의 분위기가 반긴다. 항구 주변에는 벽화가 곳곳에 그려져 있어 걷는 재미가 있다. 방파제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어 멀리서 보면 진짜 배가 떠 있는 듯한 착시도 느껴진다.

이곳에는 현지에서 유명한 꽈배기 전문점도 있다. 일반 밀가루가 아닌 쌀로 만들어진 꽈배기로, 돌미역을 활용한 메뉴도 있어 색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풍미가 고소하고 식감도 쫄깃해 여행 중 간식으로 딱 알맞다.

 

7. 간포 깍지길로 이어지는 코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간포 깍지길도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총 8개 구간으로 구성된 이 코스 중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연동항부터 문무대왕릉까지의 해안길이다. 이 중에서도 전촌항부터 송대말까지의 구간은 차로 중간중간 이동하며 걸어도 부담이 없다.

전촌항에서 사룡굴 방향으로 걷다 보면 파도가 부딪혀 생긴 굴 두 개를 볼 수 있다. 이곳은 동해의 일출을 담기 위해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단용굴이 이어지는데, 지형 특성상 접근이 쉽지 않아 멀리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8. 간포항과 해국길의 매력

전촌항에서 간포항까지는 차량을 이용해 이동하고, 간포 공설시장에서 해국길로 이어지는 골목길로 들어가면 또 다른 매력이 펼쳐진다. 오래된 가옥과 적산가옥, 그리고 해안 절벽에 피는 해국을 주제로 한 벽화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이다. 좁고 굽은 골목길을 따라 걷는 동안 벽화를 감상하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간포제일교회 아래의 계단은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오래된 콘크리트 창고가 나타나는데,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사업가의 별장 창고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지금은 ‘192’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며, 빈티지한 소품과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전 목욕탕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바뀐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단, 수요일은 휴관일이니 방문 전 확인이 필요하다.

 

9. 송대말 등대에서의 마무리

마지막 코스는 송대말 등대다. 따로 주차장이 없기 때문에 인근 공터에 주차해야 하지만, 짧은 도보 이동으로 도착할 수 있다. ‘송대말’은 소나무가 많은 육지의 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일출과 일몰 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최근 등대는 보수 공사를 통해 경주를 대표하는 가은사지 삼층석탑의 형상을 본뜬 구조로 다시 세워졌다. 등대 주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해질녘 풍경은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충분히 멋진 장면이었다. 이번 여행을 조용히 마무리하며 자연이 주는 여운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마치며

경주의 해안길은 단순히 걷는 길 그 이상이었다. 바닷가를 따라 걷는 동안 수천만 년의 시간을 품은 주상절리부터 오래된 골목길의 흔적, 현대적인 문화공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며 마주한 풍경은 모두가 제각각의 감정을 담고 있었고, 그만큼 오래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됐다.

굳이 완벽한 날씨나 준비가 아니어도 괜찮다. 마음이 가는 순간, 바다로 한 걸음 내딛어보면 그 안에 머무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경주 해안길, 그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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