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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통영 한 달 살기 중 만난 진짜 겨울의 맛, 굴과 고등어 그리고 맥주

by soso story 2026. 2. 5.

겨울이 되면 이상하게 남쪽 바다가 떠오른다. 서울은 눈이 내리고 바람이 매서워도, 통영은 언제나 조금은 따뜻하다. 차가운 계절인데도 이 도시만은 부드럽게 감싸주는 공기가 있다. 이번엔 그 공기를 조금 더 오래 느끼고 싶어서 통영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아침엔 향토집에서 굴 코스로 하루를 연다. 생굴 대신 구이와 찜, 굴밥이 차려진 상은 보기만 해도 포근했다. 초장에 찍지 말고 그냥 먹으라던 사장님의 말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막상 그대로 먹으니 바다 향이 훨씬 또렷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굴밥에 막걸리를 곁들이니 온몸이 데워졌다. 해외에서는 귀하던 굴이 이곳에서는 넉넉하게 쏟아진다. 푸짐하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바다를 앞에 두고 걷는다는 건

식사를 마치고 무전해변공원으로 향했다. 바다는 잔잔했다. 겨울인데도 파도는 조용했고,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남해의 바다는 늘 그렇다. 격렬하지 않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곁에 머문다. 눈앞에 펼쳐진 굴양식장 덕분인지 더 정겨운 풍경이었다. “뱃속의 굴들아, 너희 고향으로 간다.”는 농담이 괜히 웃음을 자아냈다.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가 서피랑 계단 쪽으로 걸었다. 계단은 99개, 꼭대기까지 오르는 동안 바람이 불었다 멈췄다를 반복했다. 서피랑 떡볶이집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냄새는 강렬했다. 1,000원짜리 떡볶이에 치킨을 곁들이니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다. 청양고추가 살짝 올라간 매운맛이 겨울 공기를 뚫고 들어왔다.

 

달콤한 마카롱, 짭조름한 맥주

떡볶이로 매운 입을 달래러 향한 곳은 ‘통카롱’. 항남동 골목 2층에 자리한 작은 카페다. 색색의 마카롱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통영 바다를 닮은 푸른빛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굴맛 마카롱은 호기심에 하나 사봤다. 의외로 괜찮았다. 바닐라향 속에 짭조름함이 아주 살짝 묻어나는, 묘한 조화였다.
그리고 3차는 통영맥주.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한 공간이라 입구부터 독특했다. ‘남탕’과 ‘여탕’ 표지판이 그대로 남아 있어 웃음이 났다. 안으로 들어서면 바의 조명이 따뜻하다. 유자향이 나는 밀맥주, 흑맥주, 바나나 향의 바이젠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한 잔에 4,000원이라 부담 없었고, “이 정도면 서울의 절반 가격”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유리창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술을 마시며 서로 다른 색의 파도를 보는데, 말이 필요 없었다. 이 도시에는 겨울의 고요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피랑 벽화마을에서 마주한 조용함

다음날 아침은 동피랑으로 향했다. 동쪽 비탈을 따라 올라가면 형형색색의 벽화가 이어진다. 평일이라 그런지 마을은 고요했다. 바람 소리와 고양이 발소리만 들릴 뿐. 사람들로 붐비던 여름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길가에는 동백꽃이 피어 있었다. 겨울에 피는 꽃이라니, 대단한 전략가 같다며 웃었다. 추운 계절에도 자기 색을 잃지 않는 그 꽃이 왠지 통영과 닮았다. 산과 바다 사이에 포근히 자리한 이 마을도 그렇게 제빛을 내고 있었다.

해질녘, 달아공원에서 본 노을

통영의 노을은 달아공원에서 가장 예쁘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창문 밖으로 바다가 따라왔다. 언덕 위에 자리한 공원에 오르자 햇살이 부드럽게 퍼졌다. 섬들이 점점 붉게 물들며 하나씩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말이 사라졌다. 카페 하나 없이, 음악도 없이, 바람과 파도만 있는 그 고요함이 완벽했다.
사진으로 보면 다 담기지 않는다. 노을의 색은 보는 순간마다 달랐다. 분홍빛이 섞였다가, 금빛으로 번졌다가, 이내 붉은 기운으로 사라졌다. 손이 시릴 정도로 추웠지만,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 풍경은 통영 겨울의 결말 같았다.

하루의 끝은 고등어 회

도시로 돌아오는 길, 중앙로 근처의 ‘욕지고등어’에서 회를 포장했다. 아이스팩에 꼼꼼히 포장된 고등어를 들고 숙소로 돌아오니 손끝이 시렸다.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펴고 앉아, 소주 한 잔과 함께 고등어회를 먹었다. 지방이 은근하게 감도는 고소함, 바다의 윤슬이 혀끝에 번졌다. 방어보다 참기름 같다고 해야 할까. 그날의 노을이 아직 입안에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통영의 밤은 조용했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창문을 스쳤다. 한 모금의 술, 한 점의 생선, 그리고 이불 속의 따뜻한 온기. 그게 전부였지만, 이상할 만큼 충만했다.

겨울 통영을 다녀오며 다시 느꼈다. 여행의 시작은 늘 ‘먹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걸. 굴, 떡볶이, 맥주, 고등어회까지 — 이 도시의 맛은 그 자체로 겨울의 기억이 된다.
다라공원에서 본 붉은 하늘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결국엔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겨울에 통영을 찾는 이유는, 바다가 아니라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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