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3월 말, 봄 기운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시기. 진달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 전라남도 해남과 강진 일대의 주작산과 등용산(일명 덕룡산)을 찾았다. 아직 만개하진 않았지만, 흐드러지게 피기 전의 진달래를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이곳은 단순한 봄꽃 산행지로 보기엔 아까운 곳이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능선과, 그 사이사이에 핀 연분홍 진달래, 그리고 발아래 펼쳐지는 해남·강진 지역의 풍경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산행은 소석문 주차장에서 출발해 등용봉을 지나, 주작산 정상인 등용봉(475m)을 거쳐 작천소령을 지나 오소재로 하산하는 코스였다. 중간중간 바위 능선이 이어지며 밧줄 구간과 경사가 반복되는 만큼, 산을 오르는 맛이 제대로 있었다.
봄의 기운을 한 발 먼저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그리고 기암능선과 봄꽃을 함께 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시기의 주작산·등용산은 충분히 매력적인 산행지다.
1. 꽃소식 먼저 전하자면
진달래는 아직 만개하진 않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30% 정도 개화한 상태. 하지만 양지 쪽이나 바람이 잘 드는 능선 부근은 꽤 많이 피어 있었다. 반면 음지나 골짜기쪽은 대부분 봉오리 상태로, 아직 꽃망울이 닫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행 중간중간, 바위 틈 사이에 피어난 진달래를 만나게 될 때면 절로 감탄이 나왔다. 바위와 꽃이 어우러진 풍경은 도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특히 대포바위나 시소바위 주변에는 진달래가 바위의 틈새를 비집고 올라와 있었고, 그 모습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진달래가 절정을 맞이할 4월 초가 되면, 이 능선길은 연분홍으로 물들게 될 것이다.
2. 생각보다 험했던 산길
이번 산행은 단순한 진달래 구경이 목적이었지만, 막상 들어서 보니 코스 자체가 꽤 험했다. 소석문 주차장에서 시작해 징검다리를 건넌 뒤 바로 시작되는 가파른 오르막은 첫 구간부터 체력을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첫 봉우리인 등용산 동봉(420m)까지는 약 2km 남짓한 거리지만, 초반부터 급경사가 이어지며 숨이 찼다. 하지만 동봉 정상에 오르면 서봉(432m)까지는 능선을 따라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진다. 그 사이 진달래 군락이 부분적으로 나타났고, 풍경을 즐기면서 걸을 수 있었다.
서봉을 지나 작천소령으로 향하는 길부터는 본격적으로 주작산 능선이 시작된다. 이 구간부터 바위가 하나둘 등장하고, 이름 붙은 명소들도 잇따라 나타난다. 대포바위, 흔들바위, 시소바위 같은 기암들이 줄지어 서 있고, 길은 밧줄과 계단, 바위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걷는 내내 시선을 빼앗는 바위 형상과, 그 사이에 피어 있는 봄꽃들이 번갈아 나타나기 때문에 길은 험하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다만, 길이 긴 만큼 충분한 체력과 시간을 확보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3. 주작산 능선길, 하늘 아래 바위 정원
주작산의 백미는 단연 능선길이다. 작천소령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되는 바위 능선은, 마치 자연이 조각한 정원 같았다. 뾰족뾰족한 바위들이 줄지어 솟아 있고, 그 사이로 진달래와 현호색이 피어 있어 한 폭의 풍경화처럼 느껴졌다.
이 구간에서는 이름 붙은 바위들도 여러 개 만날 수 있었다. 흔들바위는 직접 흔들어 봐도 잘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모양이 독특해 시선을 끌었고, 시소바위는 넓게 트인 조망과 함께 어우러져 가장 기억에 남는 지점 중 하나였다.
대포바위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멀리서 보면 진짜 대포처럼 뻗어 있고, 그 주변에 핀 진달래는 강한 암석 지형과 대비돼 눈에 띄는 풍경을 만들어냈다.
능선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위 하나를 넘고 나면 또 다른 바위가 나오고, 또 다른 봉우리가 이어지는데, 이런 반복이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산행의 흥미를 높였다. 마치 끝없는 바위 미로를 걷는 느낌이었다.
4. 진달래 외에도 다양한 봄꽃들
이번 산행에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진달래 외에 다른 봄꽃들도 꽤 많이 피어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동백꽃이었다.
작년에는 동백이 드물었는데, 올해는 눈에 띄게 많아졌다. 활짝 핀 동백, 봉오리를 막 터뜨린 동백,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꽃잎들이 능선길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진달래와 달리 동백은 나무 그 자체로 꽃이 활짝 피어 있어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진한 붉은색이 연한 분홍빛 진달래와 대비되어 더욱 돋보였고, 일부 구간에서는 두 꽃이 나란히 핀 곳도 있었다.
또 하나 주목할 꽃은 현호색이다. 보랏빛과 파란빛이 섞인 이 작고 섬세한 꽃들은 산길 가장자리나 바위 틈에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이름 모를 들꽃들이 제각각 피어나 봄이 확실히 산 속 깊이 스며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5. 산행 팁과 체크리스트
주작산과 덕룡산을 잇는 이번 코스는 짧지 않은 거리와 다양한 지형이 공존하는 구간이다. 그래서 산행을 떠나기 전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총 거리는 약 13km, 소요 시간은 보통 6시간에서 7시간 사이. 체력이 부족하거나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소 힘들 수 있다. 특히 바위 능선과 밧줄 구간은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다.
산행 전 준비할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접지력 좋은 등산화
- 밧줄 구간 대비용 장갑
- 햇볕을 피할 수 있는 모자와 선크림
- 충분한 수분과 간식
- 체력 안배를 위한 여유 있는 시간 계획
주차는 소석문 주차장을 이용하면 되며, 바로 앞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단, 산행 시작하자마자 바로 급경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초반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달래는 보통 4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만개하기 때문에, 만개 시기에 맞춰 방문한다면 훨씬 더 풍성한 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주작산과 덕룡산은 단순히 봄꽃을 보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바위로 가득한 능선과 그 사이에 피어난 꽃들, 그리고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풍경이 어우러져 걷는 내내 새로운 장면을 선사했다.
진달래는 아직 봉오리 상태였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막 피어나려는 생동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대포바위, 시소바위, 흔들바위 같은 명소들은 단순한 바위가 아닌 하나의 풍경이었고, 그 위에 피어난 진달래는 그 자체로 봄의 선언처럼 느껴졌다.
산행은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만족감도 컸다. 힘들게 올랐던 능선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짧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감탄을 불러왔고, 매 순간이 새로운 장면으로 이어졌다.
계절의 변화가 눈앞에서 느껴지는 이 코스는 봄 산행지로 강력히 추천할 만하다. 특히 4월 초중순에 다시 찾는다면, 만개한 진달래와 훨씬 더 화려한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산행은 그 봄을 준비하는 예고편 같은 기분이었다.
#주작산 #덕룡산 #진달래 #봄산행 #바위능선 #산행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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